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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이’부터 ‘빅토르 최’까지 — 알마티 도심에서 당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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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이’부터 ‘빅토르 최’까지 — 알마티 도심에서 당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얼굴들
      ‘아바이’부터 ‘빅토르 최’까지 — 알마티 도심에서 당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얼굴들
      12.08.2026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알마티 동상 순례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알마티의 동상들을 만나는 산책 … ➀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알마티 도심에는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온 명사(名士)들의 흔적이 깊게 패어 있다. 녹음 짙은 대로와 길모퉁이에서 만나는 동상들은 저마다 이 땅이 품어온 다채로운 서사를 들려준다. 여행자의 설레는 시선으로 알마티 곳곳의 산책로를 따라 각양각색의 도심 속 인물상들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보자.

      카자흐 민족의 정신적 지주 — 아바이 쿠난바이울릐(Абай Құнанбайұлы, 1845~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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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마티를 관통하는 대로인 ‘아바이 거리(Абай даңғылы/Abay avenue)’의 동쪽 끝자락을 향해 걷다 보면, 도심의 호흡이 모여드는 넓은 광장에 다다른다. 그 중심에 묵직한 존재감으로 곧게 서서 도심을 굽어보는 인물상이 있다. 바로 이 대로와 광장에 이름을 남긴 주인이자 ‘카자흐 현대 문학의 아버지’, 그리고 ‘카자흐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아바이 쿠난바이울릐다.

      ‘아바이 광장’ 한가운데 자리한 이 13미터 높이의 청동상은 단순히 차가운 금속으로 이루어진 조형물이 아니다. 학생들이 그의 시를 읊조리고, 연인들이 약속을 잡으며, 여행자와 시민들이 잠시 그늘에 앉아 쉬어가는 일상 속의 휴식처다.

      아바이 동상을 둘러싼 풍경 역시 특별하다. 동상 뒤편에는 소련 시기 세워진 알마티의 대표 랜드마크 ‘카자흐스탄 호텔’이 웅장한 위용을 뽐내며 솟아 있고, 시선을 달리하면 남쪽 하늘 아래 펼쳐진 톈산산맥의 만년설 능선이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이룬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눈매로 앞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한평생 민족의 계몽을 향해 바쳤던 깊은 사색이 도심 전체에 낮게 읊조려지는 듯하다.

      유목민의 구전 문학에 머물던 카자흐어에 서구와 러시아의 문학적 자양분을 이식해 현대 카자흐 문학의 기틀을 세우고 문맹 퇴치와 신교육을 주창하며 민족의 의식을 깨운 그는 단순한 문학가를 넘어선 진정한 ‘시대의 스승’이었다. 그의 저서 <잠언집(Қара сөздер)>은 오늘날에도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삶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알마티 도심 순례의 첫 발걸음으로 그를 만나는 것은 이 땅이 품고 있는 위대한 정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건립 연도: 1960년
      •위치: 아바이 광장(Абай алаңы/Abay square)
      •감상 포인트: 아바이의 시선이 향하는 도심으로 눈길을 돌려보고, 동상 뒤편의 랜드마크인 ‘카자흐스탄 호텔’의 독특한 건축미와 만년설을 품은 톈산산맥의 절경을 만끽해본다.


      29세에 작고한 천재 학자의 날카로운 눈빛 — 쇼칸 왈리하노프(Шоқан Уәлиханов, 1835~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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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이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자흐스탄 국립과학아카데미(Қазақ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ның Ұлттық ғылым академиясы) 건물 맞은편, 고즈넉한 녹음이 우거진 작은 광장으로 들어서면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의 동상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주인공은 19세기 중앙아시아의 미지 영역을 전 세계에 알린 탐험가이자 과학자, 쇼칸 왈리하노프.

      제복 차림으로 한 손에 문서를 쥐고 사색에 잠긴 듯한 쇼칸의 형상은 그가 일평생 바쳤던 학문적 열정과 탐험가로서의 기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카자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청년 장교이자 민속학자로 활약했던 그가 20대의 나이에 목숨을 걸고 동투르키스탄 지역을 탐험하며 남긴 기록들은 당시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지리를 유럽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8미터 높이의 왈리하노프 동상이 세워진 국립과학아카데미 주변은 알마티에서도 가장 고풍스럽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다. 동상 주위로 늘어선 분수대와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에는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청년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광장 한편에서는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자주 열려 색다른 구경거리를 더한다.

      불꽃 같은 삶을 살다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지적 유산은 카자흐스탄 학문의 중심지인 이 광장에서 여전히 번뜩이고 있다. 알마티 도심 한가운데서 마주하는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청년의 열정이 도시의 역사와 만날 때 얼마나 강렬한 유산으로 남는지를 증명해 준다.

      •건립 연도: 1969년
      •위치: 카자흐스탄 국립과학원(Қазақ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ның Ұлттық ғылым академиясы /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Kazakhstan)앞 광장
      •감상 포인트: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사색에 잠겨 있는 쇼칸의 조각상은 중앙아시아 속 미지의 땅을 탐구했던 청년 학자의 지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국립과학원 본관의 고풍스러운 본관을 배경으로 카자흐 민족의 지성을 상징하듯 도심을 묵묵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마주해보자.

      거리의 이름이 된 이방인 예술가 — 타라스 셰브첸코 (Тарас Шевченко, 1814~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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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아바이 동상과 왈리하노프 동상 사이를 잇는 도심 동선 한복판, 알마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셰브첸코 거리’의 동쪽 끝에서 우크라이나 민족 출신의 시인이자 화가 타라스 셰브첸코의 동상과 마주한다. 제정 러시아 시기 카자흐 땅에 유배를 왔던 이 이방인 예술가가 알마티의 대표 거리 이름이자 상징으로 남게 된 사연은 무척이나 이채롭다.

      19세기 중반, 제정 러시아 왕실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33세에 망기스타우 지역으로 유배당했던 셰브첸코는 혹독한 창작 금지 조치 속에서도 카자흐 민중의 일상과 이국적 풍경을 몰래 화폭과 글에 담아냈다. 당시 러시아 제국에 억압받던 카자흐인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해 이들의 고유한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외부 세계에 알린 그의 작업은 유배자와 피지배 민족이라는 아픔을 넘어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공유하는 깊은 연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정신적 교감 속에서 탄생한 셰브첸코의 창작물들은 오늘날 옛 카자흐 민족의 풍속을 증언하는 귀중한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향 우크라이나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알마티 도심 한가운데 세워져 지나가는 시민들을 바라보는 타라스 셰브첸코의 동상은 이렇듯 유배의 고통마저도 연대와 예술로 승화시키며 오늘날 다민족 카자흐스탄 사회의 포석을 놓은 숭고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건립 연도: 2000년
      •위치: 셰브첸코-도스틕 거리 교차점(Шевченко-Достық / Shevchenko-Dostyk avenue)
      •감상 포인트: 우크라이나 지토미르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조각된 이 동상은 마치 거대한 돌 파도 속에서 시인의 머리가 솟아오르는 듯한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 시각적 묘사를 따라 핍박을 견뎌내고 오늘날 카자흐스탄이 지향하는 다민족 화합과 포용의 시초가 된 이방인 예술가의 삶,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 유산을 되짚어보자.

      카자흐 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사랑한 독일계 문학 거장 — 게롤드 벨게르(Герольд Бельгер, 193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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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동상의 주인공 역시 타의에 의해 카자흐 땅으로 이주, 이방인으로서의 아픔을 딛고 카자흐스탄의 발전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독일계 카자흐스탄인 작가이자 번역가, 게롤드 벨게르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1941년 러시아 볼가 지역에서 카자흐스탄의 시골 마을로 쫓겨왔던 7세의 독일인 소년. 낯선 땅에서 그를 따뜻하게 품어준 것은 카자흐 이웃들과 그들의 언어였다. 벨게르는 카자흐어, 러시아어, 독일어를 완벽하게 체화하며 세 개의 문화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문학 거장으로 성숙해갔다.

      그는 평생에 걸쳐 카자흐 문학의 정수인 아바이 쿠난바이울릐의 시와 사상을 러시아어와 독일어로 번역해 세상에 알렸다. 수많은 카자흐 사람들보다 더 깊이 카자흐의 언어와 영혼을 이해했던 그를 향해 현지인들은 ‘카자흐의 정신적 귀화인’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의 동상 앞에서 마주하는 서사는 서로 다른 민족이 언어와 문학을 통해 어떻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하나의 공동체를 완성해 냈는지를 감동적으로 증언한다.

      이 동상은 카자흐 문화와 어문학의 번영에 기여하고 국민적 정신 통합을 위해 평생 헌신한 그의 공로를 기리고자 대통령이 직접 건립을 추진하여 지난 2021년 세워졌다.

      •건립 연도: 2021년
      •위치: 카반바이 바틔르-왈리하노프 거리 교차점(Қабанбай батыр-Уәлиханов / Kabanbay Batyr-Ualikhanov street)
      •감상 포인트: 첫 번째로 소개한 ‘아바이’의 문학 유산과 연계해 감상해 보자. 이방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카자흐 민족의 영혼을 번역해낸 그의 삶을 통해 문학으로 완성된 카자흐스탄 다문화 사회의 포용성을 비추어 본다.


      젊음의 거리에 흐르는 ‘영원의 록 스피릿’ —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1962~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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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마티 도심에서 가장 사랑받는 산책로인 툴레바예프 거리를 걷다 보면 당장이라도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발을 내딛으며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것만 같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얼굴의 동상과 마주친다. 고려인 3세이자 1980년대 소련 록의 전설, 밴드 ‘키노(Кино/Kino)’의 리더 빅토르 최다.

      단촐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 이 동상이 세워진 장소는 그가 주연으로 출연하여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이글라(Игла/바늘, 1988)>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현장이다. 영화 속 모습 그대로 긴 트렌치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듯한 실물 크기의 동상 앞에는 항상 그를 추모하는 팬들이 가져다 놓은 생화와 담배, 기타 갖가지 기념품들이 남아 있다.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보낸 그였지만, 빅토르 최의 부계는 1937년 강제 이주로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고려인 혈통이다. 할아버지와 삼촌 등 일가족이 삶을 일구었던 크즐오르다는 그의 뿌리가 서린 곳이다. 비록 주 활동 무대는 레닌그라드였으나, 중앙아시아 이주의 역사가 품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감수성은 그의 음악이 지닌 저항과 자유의 정서와 깊이 공명했다.

      빅토르 최는 한 명의 인기 가수를 넘어 억압받던 소비에트 정권 시기 청년들에게 ‘변화’를 외치며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되었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소련 땅에서 고려인의 혈통을 지닌 채 전설이 된 자랑스러운 얼굴이기도 하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툴레바예프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그의 동상 주변은 더욱 이국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로 물든다. 동상 옆 벤치에 앉아 바로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 <이글라>에도 삽입되었던 그의 명곡 ‘그루빠 크로비(Группа крови/혈액형)’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천산산맥 자락에서 도심으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시간은, 어쩌면 이번 동상 순례길에서 만끽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이고 가슴 뭉클한 순간일 것이다.

      •건립 연도: 2018년
      • 위치: 툴레바예프-지벡졸릐 거리 교차점(Төлебаев-Жібек Жолы / Tulebaev-Zhibek Zholy avenue)
      •감상 포인트: 영화 <바늘>의 명장면을 떠올리며 동상과 함께 걷는 듯한 구도로 사진을 남기고, 그의 대표적인 역작이자 극중 삽입곡인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을 들으며 주변 툴레바예프 산책로의 운치 있는 분위기를 즐겨보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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