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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한인 계몽에 헌신한 한 씨 형제, 엘리세이 루끼치와 바실리 루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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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한인 계몽에 헌신한 한 씨 형제, 엘리세이 루끼치와 바실리 루끼치
      러시아 한인 계몽에 헌신한 한 씨 형제, 엘리세이 루끼치와 바실리 루끼치
      02.09.2025
      19세기말, 러시아에 이주한 고려인의 지도자이자 조선의 독립운동가였던 최 뻬뜨르 세묘노비치 (최재형)는 1920년 극동지역에서 일본 무장 간섭자들에 의해 처형되기 전, 한인 민족을 위한 봉사를 맹세하는 '결의형제 단체'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의 초기 회원 중에는 한 엘리세이 루끼치(Хан Елисей Лукич)와 한 바실리 루끼치(Хан Василий Лукич) 형제가 있었으며, 한국학 연구자들은 이들을 러시아 한인 사회 최초의 계몽가들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전에 쓴 글에서는 필자의 할아버지 리 M.A.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최재형의 제자 중 한 명이었고 조선 교원양성학교의 초대 교장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필자의 외할머니 리(한)옐레나 옐리세예브나의 (Ли (Хан) Елена Елисеевна) 고조부인 한 루카와 그의 아들들인 엘리세이, 바실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가족 전승에 따르면, 한영광(Хан Ён Ган)은 함경북도 고위 관료의 아들이었으며, 17세 때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결혼을 거부하고 가출해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러시아에 정착하였다. 이후 그는 러시아 정교(正敎)를 받아들여 '루카'라는 이름을 얻었고 가문의 가장이자 러시아 내 최초의 한인 마을인 티진헤(지신허)의 촌장이 되었다. 러시아 극동 국립역사문서보관소에는 한루카 촌장이 서명한 1874년도 티진헤 마을 인구 명부가 보관되어 있다.

      한루카는 1902년,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특별한 공로를 인정받아 블라디보스토크 교구의 유세비우스 주교의 허가 하에 교회 담 안에 묻혔다.
      러시아로  한인 이주민들의 선견지명이 뛰어났던 지도자였던 최재형은, 대부분 문맹이었고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되던 한인 농민들의 러시아 내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오직 계몽과 러시아어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1890년대 말, 영향력 있고 성공적인 상인이었던 한 엘리세이 루끼치, 한 바실리 루끼치, 최 니꼴라이 루끼치(Цой Николай Лукич), 김 뻬뜨르 니꼴라예비치(Ким Петр Николаевич)는 최재형의 지도 아래 뜻을 모아 자본을 마련했고, 이 자본은 한인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 형제단은 거의 20년에 걸쳐 연해주 한인들의 애국적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이들은 마을과 도로 정비, 교회와 학교 건설에 자금을 투입했으며 가장 중요한 일로는 재능 있는 한인 청년들(약 100명으로 추정됨)의 학비를 지원했다.

      이들은 블라고베셴스크,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니콜스크-우수리스크의  지역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역의 우수 교육기관 (모스브칸 대학교, 모스크바상업대, 카잔국립대, 톰스크기술대, 이르쿠츠크 군사학교 등)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러시아의 명문대학교에 유학한 인물들 중에는 한인을 위한 첫 번째 교과서 저자인 Kim Ya.A.; 한국어 사전과 교과서의 공동 저자인 Shegai G.B.와 Kan K.F.; 한국어 교과서의 공동 저자 Ten M.V.와 Han P.E.; 조선 민족해방운동의 열성적인 활동가인 Khan A.A. (한명세); 블라디보스토크 남자학교의 첫 한인 교사인 Kim K.K.; 니콜스크우수리스크의 조선 사범학교 교장 Lee M.A. 등이다.

      한 씨 형제는 연해주 사회∙정치적 삶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 정교 감독관구에서 발행한 <티진헤 마을 인노켄티예프스키 선교교회 연대기>에 따르면, 이 지역 교회에 대한 첫 언급은 1891년에 있었고, 1892년에는 교회 문서에 ''한 엘리세이 루끼치(Han E.L.)이라는 교회 장로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1899년 티진헤 교회 건축위원회를 이끌었다.

      한 엘리세이는 수년 동안 교회 장로직을 성실히 수행하였고, 이에 대해 블라디보스토크 정교회 본부는 감사장과 표창장을 수여했으며 그의 직무 기간을 1909년까지 연장하였다.
      특히 1902년에는 교회 부문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력영웅 훈장(은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이는 명예로운 시민으로서의 그의 사회적 공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1910~1917년도의 참고 문헌과 공식 간행물에 따르면 ''한 엘리세이 루끼치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임업 사업가, 공공인사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선거인 명부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그가 지역 두마(지방의회) 의원 선거는 물론, 러시아 국가 두마 (의회) 선거에도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당시 선거인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출되었는데, 재산∙연령∙성별 등에 따른 자격 요건이 있었다. 특히 재산 기준에 따라 도시 유권자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부동산 소유자이거나 상공업체의 소유주였다. 그리고 인구 4,000명당 선거인 1명이 할당되었다.

      한 엘리세이 루끼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동산과 상업∙산업 기업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선거인으로 선출되었고, 1906년과 1915년 두 차례에 걸쳐 국가 두마 선거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같은 시기, 한 바실리 루끼치 역시 지방 자치 행정에 활발히 참여했다. 1910년에 발행된 <연해주 지역 연감(Памятной книжке Приморской области на 1910 год)>에 따르면 그는 아디민스카야 구의 구장으로 등재되어 있다.

      1914년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연해주 지역 한인 마을 공동체 대표들과 블라디보스토크 시와 니콜스크-우수리이스키 시 한인들이 참가한 한인 이주 50주년 기념 준비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기념행사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위원장에는 최재형이, 부위원장에는 한 엘리세이 루끼치가 선출되었다. 위원회는 총 25명으로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기념행사 프로그램 초안을 마련하였고 행사 장소로는 블라디보스토크 시가 선정되었으며, 1914년9월21일을 행사 시작일로 정했다. 이 날짜는 1864년 첫 한인 가족이 티진헤 강 유역에 정착했다는 보고서가 노브고로드 초소장 레자노프(Резанов В.)에 의해 공식 제출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14년 여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한인 이주 50주년 기념 행사는 개최되지 못했다.

      진보적인 사고를  지닌 한 엘리세이 루끼치는 1917년2월 혁명을 진심으로 환영했지만 이후의 정치 상황은 평화로운 혁명으로 이어질 희망을 주지 못했다. 최재형의 아들 최 V.P.씨는 아버지의 동료들이 정착지를 떠나 집, 농장, 상점 등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했던 상황을 회고한다. 볼셰비키(большевики)가 집권한 후 떠난 이들도 있었고 연해주에 일본군이 진입하면서 떠난 이들도 있었는데, 한 바실리 루끼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한 엘리세이 루끼치는 자신의 집을 최재형에게 맡기고 1917년10월 이전에 가족과 함께 하얼빈으로 이주했다. 사실 한 바실리는 이미 1913년부터 하얼빈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1937년1월 하얼빈 신문 <Весна(봄)>에 실린 부고 기사에 따르면, 한 바실리 루끼치는 하얼빈에 여러 공장을 세우고 집을 마련했으며, 62세에 사망하여 하얼빈 묘지에 안장되었다. 한편, 한 엘리세이 루끼치는 86세에 별세하여 1949년 조선에 안장되었다.

      박 넬리 교수는 최재형의 형제단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최재형의 형제단에 속했던 최 니꼴라이 루끼치, 한 엘리세이 루끼치, 한 바실리 루끼치, 김 뻬뜨르 니꼴라예비치의 계몽 활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다양한 활동, 특히 계몽적 기여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아직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
      이처럼 1890년대 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며 결성된 최재형의 형제단은 20세기 초에 접어들며 러시아 한인 지식인층 형성의 단단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이들은 소련과 독립 이후의 CIS국가들에서 지식인 계층으로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최 뻬뜨르 세묘노비치 (최재형), 최 니꼴라이 루끼치, 한 엘리세이 루끼치, 한 바실리 루끼치, 김 뻬뜨르 니꼴라예비치의 계몽적 업적이 향후 새로운 학술 연구와 출판을 통해 기억되고 널리 알려지기를 ∙∙∙

      볼로트베코바 마리나
      비쉬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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