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싀크’ 놀이부터 ‘샨코비스’ 연주까지…다채로운 카자흐 문화 전도사로 나선 고려인
한국의 한 초등학교 교실. 아이들이 생전 처음 접하는 ‘아싀크(Асық, 양의 복사뼈를 활용한 카자흐 전통 놀이)’를 손에 쥐고 카자흐스탄의 민속 명절 ‘나우르즈(Наурыз)’에 대해 배운다. 전통 현악기 ‘돔브라(Домбыр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펴보는가 하면, 타악기 ‘투약타스(Тұяқтас)’가 말발굽을 재료로 만든 악기라는 설명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한국의 어린 세대에게 카자흐스탄의 문화를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는 주인공은 카자흐스탄 탈디코르간 출신의 고려인 동포 최 야나 씨다. 현재 한국의 초·중·고교를 찾아 다문화 이해 수업을 진행하며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알리고 있다.
연령별 맞춤 수업… 말발굽으로 만든 악기 소식에 아이들 “신기해요”
최 야나 씨는 한국의 초·중·고교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생에게는 카자흐스탄의 유목 문화와 전통 놀이, 명절 등을 중심으로 카자흐스탄을 소개하고, 중·고등학생에게는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관계, 카자흐스탄의 환경 정책 등 보다 폭넓고 심층적인 주제를 다룬다.
수업 형태도 다양하다. 한 차례 진행되는 일일 수업부터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카자흐스탄 문화 체험 주간’까지 학교에 따라 프로그램의 규모와 형식이 달라진다. 여러 학년의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전통 놀이를 직접 체험하는 대형 특강도 열린다.
야나 씨는 “초등학생 수업에서는 유목민의 삶을 설명한 뒤 함께 아싀크 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돔브라를 보여주거나 ‘샨코븨스(Шанкобыз, 입에 대고 쇠찰을 튕겨 구강 공명으로 소리를 내는 카자흐 전통 체명악기)’를 직접 연주해주기도 한다”며 수업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특히 아이들은 우리가 어릴 때 양 뼈를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가장 신기해한다”고 말한다.
음악 수업에서 소개하는 타악기 ‘투약타스’도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소재다. 그녀는 “투약타스가 실제 말발굽을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굉장히 큰 관심을 보인다”고 웃으며 말했다.
카자흐스탄의 자연을 담은 사진 역시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장엄한 산맥과 끝없이 펼쳐진 초원, 아득한 사막의 풍경을 보여줄 때마다 교실 곳곳에서 탄성이 나온다.
“한국 아이들에겐 낯설고 신기한 카자흐스탄”… 고려인 정체성 바탕으로 문화 알려

대학원에서 글로벌 문화콘텐츠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다문화 교육 전문기관에 입사했다.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문화의 매력을 전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졸업 후 곧바로 교육 현장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고려인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교육과 강연에 집중했다. 이후 그의 강연을 인상 깊게 본 현재 소속 기관 대표의 제안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다문화 강사의 길에 들어섰다.
야나 씨는 자신의 배경이 교육 현장에서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제 안에 있는 ‘다문화성’이 가장 큰 무기입니다. 고려인으로서 고려인의 이주사를 가르칠 수 있고, 카자흐스탄 태생으로서 카자흐 문화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또 모국어인 러시아어로 언어 수업도 할 수 있죠.”
탈디코르간 출신의 모험가 소녀, 한국에서 다시 발견한 ‘나의 뿌리’
오늘날 한국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카자흐스탄을 소개하고 있는 야나 씨. 그러나 정작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고려인의 이주사를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탈디코르간에서 성장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끊임없는 모험의 시간이었다.
“저는 정말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늘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누군가와 놀고,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즐겼죠.”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소녀였던 야나 씨는 단짝 친구와 남동생과 함께 며칠에 걸친 ‘대모험’을 떠나기도 했다.
“한번은 우리끼리 어디로 갈지도 정하지 않은 채 며칠 동안 ‘대단한 모험’을 떠나기로 했어요. 먹을 것과 물을 챙겨 들고 들판으로 멀리 나갔죠. 물론 오래 버티지는 못했지만요. 음식이 떨어지고 지치기도 해서 결국 부모님이 알아채시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죠.”
해적 이야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친구들과 보물지도를 그리고 장난감을 땅에 묻은 뒤 보물을 찾아 나서는 놀이도 즐겼다.
“성향이 이렇다 보니 저는 늘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모두가 무서워하는 건물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가보기도 하고, 커다란 벌레를 잡기도 했죠. 누구보다 오래 숨을 참거나 가장 큰 눈덩이를 만들려고도 했어요. 어릴 때 저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 줄 아는 아이였어요.”
자신이 고려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가족의 구체적인 역사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선대에 대해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특히 1937년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죠. 그저 조부모님들이 서로 고려말로 말씀하시는 걸 보며 ‘저 언어를 당신들의 부모님께 배우셨겠구나’ 하고 어렴풋이 알았을 뿐입니다.”
야나 씨는 증조할머니를 직접 보며 자랐기에 그 모습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후 카자흐 국립세계언어대학교에서 한국어문학을 전공하면서 조부모 세대가 사용하던 말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이 익숙하게 들어온 언어가 오늘날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다.
가족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도 대학원에 진학한 뒤 역사학 교수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대학원에서 역사학 교수님들에게 배우면서 조상들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1937년 강제이주의 구체적인 역사도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죠.”
할아버지께 직접 가족사를 여쭤보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기억을 선뜻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야나 씨는 책과 연구 자료를 통해 조상들의 역사를 하나씩 찾아갔다.
단순한 유학에서 ‘조상의 땅’으로
15세 때 여름캠프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그녀는 스무 살이 되어 교환학생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학부 과정을 마친 뒤 한국어학과 교수들에게 재외동포재단의 장학 프로그램을 소개받았고, 선발 과정을 거쳐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 학비 부담 없이 공부하는 동시에 생활비 지원을 받으며 석사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유학 당시 한국에 머무는 것이 너무나 좋았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한국에 와서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그러나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떠날 당시만 해도 그녀에게 한국행은 ‘역사적 조국으로의 귀환’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 왔을 때 제가 ‘모국으로 온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외국인 유학생으로서 해외에 공부하러 간다는 느낌이 더 컸죠.”
오히려 이 여정이 가족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는 할아버지를 통해 알게 됐다.
“할아버지께서는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제가 증조할머님과 증조할아버님의 꿈을, 그리고 할아버지 당신의 꿈까지 이루어주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거듭 말씀하셨어요.”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신의 가족사를 깊이 탐구하면서 야나 씨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 단순한 타국이 아니라 조상들의 삶과 기억이 깃든 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제 선대에 대한 역사를 더 깊이 공부하고 나서야 제가 단순히 외국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조상들의 땅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렇다고 한국에 대한 소속감을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느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지도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야나 씨는 자신이 한국에서 그저 외국인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교수는 이 말을 듣고 놀라면서도 안타까워했다고.
“교수님께서는 제가 자신과 똑같은 한국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저 역시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고 계속 격려해주셨죠.”
카자흐스탄이 수업의 일부가 될 때
오늘날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야나 씨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아이들에게 고려인의 역사를 가르칠 수도 있고, 러시아어를 가르칠 수도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문화를 소개할 수도 있다.
그런 그녀에게 카자흐스탄은 단순한 수업의 주제가 아니다.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자 가족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카자흐 문양의 형태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문양이 지닌 의미를 설명한다. 아싀크 놀이를 소개할 때도 단순히 놀이 방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린 시절 어떻게 양 뼈를 가지고 놀았는지를 이야기한다. 초원의 사진을 보여줄 때 역시 화면 속 풍경에 대한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직접 살아온 경험을 함께 들려준다.
수업은 학교와 학생들의 연령에 따라 구성과 내용도 달라진다. 초등학생에게는 놀이와 음악, 전통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중·고등학생에게는 역사와 국제관계, 환경보호 등 보다 현대적인 주제를 다룬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카자흐스탄은 한국 아이들의 인식 속에서 단순히 지도 위에 표시된 나라의 이름을 넘어 사람과 이야기, 음악과 놀이가 살아 있는 문화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영화로 풀어나가는 개인의 서사
한국에서의 삶은 야나 씨를 영화의 세계로도 이끌었다. 그녀는 여가 시간을 활용해 이주민들의 삶을 다룬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갈등하며 새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이들의 경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결과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작품을 통해 ‘디아스포라영화제(Diaspora Film Festival)’의 이주 배경 청소년 대상 영화 제작 교육 프로그램인 ‘영화, 소란(Film, SOLAN)’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영화 제작부터 상영까지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외국인 유학생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해 이제는 다른 이들의 문화와 삶을 전달하는 다문화 교육 전문가로 성장한 야나 씨에게 이 작업은 자신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 작업과 함께 카자흐스탄을 알리는 일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탈디코르간에서 시작해 한국으로 이어진 그녀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은 이제 한국의 교실에서 두 나라를 잇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있다.
한국의 아이들이 처음으로 아싀크 놀이를 접하고, 돔브라를 살펴보고, 샨코비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발굽으로 만든 투약타스에 호기심을 보이는 순간, 카자흐스탄은 아이들에게 지도 위의 낯선 나라가 아니라 직접 만나고 경험하는 문화가 된다.
야나 씨에게도 그 순간은 특별하다. 한때 너무나 익숙했던 고향의 문화를 낯선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새로운 언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고향의 모습. 탈디코르간에서 시작된 한 고려인 여성의 삶은 그렇게 한국의 교실에서 카자흐스탄을 만나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