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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 전쟁영웅 소녀들부터 한민족 독립운동가 후손까지 - 알마티 곳곳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동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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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 전쟁영웅 소녀들부터 한민족 독립운동가 후손까지 - 알마티 곳곳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동상들
      카자흐 전쟁영웅 소녀들부터 한민족 독립운동가 후손까지 -  알마티 곳곳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동상들
      16.08.2026

      알마티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도심 속 동상들을 만나는 산책 … ➁

      알마티 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인물 박물관’이다. 도심 공원과 광장 곳곳에는 카자흐스탄의 정신을 세운 사상가부터 시대를 불태운 청년 학자, 전화(戰火) 속에서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영웅, 그리고 이 땅을 사랑했던 이방 출신 거장들의 동상이 숨 쉬고 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알마티 도심 속 동상 순례길에 나서본다.
      지난 호에서는 카자흐 민족의 주요 인물과 강제이주 등의 역사 속에서 이 땅에 뿌리내린 타 민족 출신 인물들의 동상을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이번 편에서는 카자흐스탄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은 물론, 알마티 도심에서 뜻밖에 조우하게 되는 반가운 얼굴들을 함께 만나본다.

      조국 수호를 위해 전쟁 포화 속을 누빈 두 영웅 —
      알리야 몰다굴로바(Әлия Молдағұлова, 1925~1944),
      만슉 마메토바(Мәншүк Мәметова, 1922~1943)





      알마티의 중심을 관통하는 ‘아스타나 광장(Астана Алаңы/Astana Square)’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 중심에서 푸른 녹음과 정갈한 도심을 배경으로 기개 높게 서 있는 두 여성의 동상과 마주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 나이에 소련의 붉은 군대 소속으로 전선에 나가 전설적인 공훈을 세우고 장렬히 전사한 카자흐 민족의 두 여성 영웅, 알리야 몰다굴로바와 만슉 마메토바다.

      두 사람의 동상은 그 자체로 강렬한 서사를 전한다. 결연한 표정으로 당차게 걸음을 내딛는 만슉 마메토바, 그리고 어깨에 총을 멘 채 날카로운 눈빛을 던지는 알리야 몰다굴로바의 모습은 이 광장의 분위기를 단숨에 압도한다.

      스무 살 남짓의 어린 나이였던 이들은 나치 독일의 침공에 맞서 자신의 삶 대신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만슉 마메토바는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홀로 기관총을 잡고 끝까지 진지를 지키다 전사했고, 알리야 몰다굴로바는 뛰어난 사격 실력으로 수십 명의 적을 쓰러뜨리며 치열한 육탄전 끝에 목숨을 바쳤다. 두 사람 모두 사후 ‘소련 영웅’ 칭호를 받으며 카자흐스탄 역사상 가장 강인하며 용맹한 여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거친 포화가 저문 오늘날, 이들의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은 시민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주말마다 축제가 열리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부서지는 광장 한가운데서 두 영웅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 이 땅에 흐르는 일상이 어떤 용기와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알마티 도심 산책길에서 만나는 두 여성 영웅의 동상은 과거 전란의 기억을 되새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카자흐스탄 여성들이 보여준 당당함과 강인함을 증언하는, 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가장 빛나는 유산이다.

      •건립 연도: 1997년
      •위치: 아스타나 광장 (Астана Алаңы / Astana Square)
      •감상 포인트: 생전 서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으나 조국을 위해 동일한 전선에서 헌신했던 두 여성 영웅이 하나의 청동상으로 재회한 상징성에 주목해 보자. 남성 중심의 서사 속에서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강인한 여성상으로 우뚝 선 두 사람의 당당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알마티에서 조우하는 인도의 성웅 —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


      이번에는 번잡한 도심 한복판을 지나 호젓한 녹음이 짙게 깔린 알말르 구(Алмалы ауданы)로 향해보자. 이곳에는 뜻밖의 이름을 가진 공원이 숨어 있다. 바로 푸른 수목이 우거진 ‘간디 공원(Ганди атындағы саябақ/Gandhi Park)’.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이자 전 세계에 ‘비폭력·무저항’의 가치를 전파한 바로 그 간디의 이름을 딴 이 공원 안에는 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은 번잡한 도심의 소음을 아득하게 떨어뜨려 놓을 만큼 정적이고 단정하다.

      2003년 인도 정부가 카자흐스탄과의 우호 증진을 기리며 기증한 이 동상은 특유의 앙상하면서도 결기 어린 간디의 자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유라시아 대륙의 교차로 알마티에서도 예의 그 평화로운 아우라를 내뿜는다.

      동상이 들어선 ‘마하트마 간디 공원’ 부지는 본래 1970년대부터 도심 속 녹지 공간으로서 존재했으나 동상 건립과 함께 간디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새롭게 정비되었다. 지금은 잘 가꿔진 산책로와 카페와 쉼터 시설 덕분에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거나 벤치에 앉아 여유를 누리는 알마티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외모와 종교, 언어가 각기 다른 120개가 넘는 다민족 구성원들이 한데 어우러져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이 공원의 풍경이야말로 평생에 걸쳐 비폭력, 공존과 화합을 외쳤던 간디가 그토록 그리던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붐비는 대로변에서 벗어나 간디 공원 속 호젓한 산책로를 걸어보자. 그가 평생을 통해 증명해 보였던 평화와 타자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가만히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고요한 공원길은 여행자에게 조용한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건립 연도: 2003년
      •위치: 마하트마 간디 공원(М. Ганди атындағы саябақ / M. Gandhi Park)
      •감상 포인트: 러시아 모스크바 소재 ‘인디라 간디 광장’에 세워진 동상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나아가는 특유의 자태가 번잡한 도심과 대비를 이루며 그가 평생 외쳐온 비폭력과 평화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한다.


      중앙아시아 언덕 위에서 마주한
      영국 팝의 거장,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 —
      비틀즈(The Beatles)





      이제 조금 색다른 산책 코스를 따라가보자. 다음 행선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알마티의 남산타워’, ‘콕퇴베(Көктөбе, ‘푸른 언덕’을 의미)’다. 알마티 도심과 톈산산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의 산책로에 올라서면 뜻밖의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리버풀 출신의 전설적인 4인조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의 실물 크기 청동상이다.

      2007년 세워진 이 동상은 시청이나 정부의 정치적 치적이 아닌, 비틀즈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뜻을 모은 알마티 팬들과 현지 문화 예술 후원자들의 기여로 탄생했다. 동상 건립 추진 과정에서 현지 팬들은 영국의 비틀즈 법인(Apple Corps) 및 생존 멤버들(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과 직접 소통하여 공식 승인을 얻어냈고, 카자흐스탄의 조각가 에두아르드 카자랸(Эдуард Казарян)의 손길을 거쳐 중앙아시아 최초의 비틀즈 공식 기념상으로 완성되었다.

      이 동상에는 단순한 세계적 팝스타를 향한 애정을 넘어, 옛 소련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깊은 향수가 서려 있다. 냉전 시기, 소련 사회에서 서방의 대다수 문화적 산물이 그러했듯 비틀즈의 선율 역시 ‘자본주의 퇴폐 문화’로 낙인찍혀 철저히 금기시되었다. 그럼에도 음악을 향한 애호가들의 갈증은 병원에서 버려진 엑스레이 필름에 홈을 파 만든 일명 ‘뼈 레코드(Bone Music 혹은 X-ray record)’ 등 암시장의 음성 음반 유통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비틀즈의 음악은 억압 속에서도 청춘을 견디게 한 ‘자유의 밀주(密酒)’로 남았다.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몰래 숨어 들으며 자유를 꿈꾸게 했던 그 시절 비틀즈의 선율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이 언덕 위의 정겨운 청동상으로 결실을 맺은 셈이다.

      벤치에 앉아 어쿠스틱 기타를 쥔 존 레논(John Lennon)과 그 뒤에 나란히 선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링고 스타(Ringo Starr)의 소박한 모습은 친근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존 레논 바로 옆 빈자리에 앉아 이 전설적인 팝밴드의 일원이 된 듯 사진을 찍어보고, 조형물에 내장된 스피커에서 흐르는 ‘Let it be’이나 ‘Hey Jude’를 들으며 쾩퇴베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시간. 동서양의 유산과 청춘의 낭만이 격의 없이 어우러지는, 알마티 산책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뜻밖의 감동적인 순간이다.

      •건립 연도: 2007년
      •위치: 콕퇴베 공원(Kök-Töbe Park) 정상 산책로
      •감상 포인트: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는 존 레논 옆 빈자리에 앉아 쾩퇴베 언덕 너머의 정원들과 수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겨보자. 조형물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비틀즈의 명곡과 함께, 중앙아시아의 높은 언덕 위에서 영국의 팝 아이콘을 마주하는 이색적인 조화를 만끽할 수 있다.


      얼음 위를 수놓은 한민족의 자부심, 영원히 기억될 피겨의 별 —
      데니스 텐(Денис Тен, 1993~2018)


      알마티 도심 산책길의 피날레는 우리에게도 남다른 울림을 주는 청년의 숨결이 서린 곳이다. 카자흐스탄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자 구한말 정미의병을 이끈 민긍호 선생의 외고손자인 고려인 4세 데니스 텐의 추모 동상 앞이다. 카자흐스탄의 국민적 영웅이자 한민족의 피를 품은 뛰어난 스포츠맨으로 양국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유독 깊고 아련한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중앙아시아에서 유례없는 기량을 선보인 그는 2011년 자국에서 열린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세계선수권(World Championships) 무대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고, 2015년 서울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주요 국제 무대를 석권하며 당대 최정상급 스케이터로 입지를 다졌다.

      커리어의 정점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었다. 그는 카자흐스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메달(동메달)을 목에 걸며 ‘동계 스포츠의 변방’이던 모국에 값진 승전보를 안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의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와의 특별한 인연도 화제가 되었다. 생전 김연아를 자신의 영감이이자 우상으로 꼽았던 그는 올림픽 갈라쇼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가 하면, 한국에서 열린 아이스쇼에도 꾸준히 참가하며 국경을 넘어선 피겨인으로서의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8년 여름, 데니스 텐은 알마티 도심 한복판에서 차량 절도범들이 휘두른 흉기에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으며 25세라는 너무도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는 카자흐스탄 전역은 물론 국제 피겨계, 그리고 ‘민긍호 의병장의 후손’임에 더더욱 따뜻한 응원을 보냈던 한국 팬들에게 커다란 슬픔과 충격을 안겼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19년,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던 바이세이토바 거리와 셰브첸코 거리 교차점 인근에 그의 모습을 본뜬 청동상이 들어섰다. 이전 편에서 만나본 ‘빅토르 최’ 동상을 조각한 러시아 출신 작가 맛베이 마쿠쉬킨(Матвей Макушкин)이 제작한 이 동상은, 은반 위에서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유려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생전 데니스 텐의 모습을 정교하게 담아냈다. 동상 하단부에는 그가 얼음 위에서 펼쳐 보였던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동상 앞에는 계절과 관계없이 그를 기억하는 시민들과 팬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과 추모 메시지가 끊이지 않는다. 한 명의 스포츠 선수를 넘어 고려인 디아스포의 자부심이자 카자흐스탄 다민족 사회의 화합을 상징했던 그를 향한 애정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차분한 산책로에 서서 동상을 바라본다. 비록 그의 청춘은 짧게 끝났지만, 카자흐스탄과 한국 피겨 팬들의 가슴을 동시에 빛냈던 그의 영혼은 알마티의 바람을 타고 영원히 이 도시에 흐르고 있다.

      •건립 연도: 2019년
      •위치: 바이세이토바 -쿠르만가즤 거리 교차점 (Бәйсейітова-Құрманғазы / Baiseitova-Kurmangazy street)
      •감상 포인트: 은반 위에서 아름다운 ‘몸의 연주’를 펼치던 생전 데니스 텐의 유려한 동작을 형상화한 조형미에 집중해 보자. 동상 발치에 늘 겹겹이 쌓여 있는 추모 꽃다발에서는 카자흐스탄 국민과 현지 고려인 사회가 그에게 보내는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새삼 느껴진다.
      동상 맞은편 가로수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향긋한 커피 한잔과 함께, 그의 아름다운 스케이팅 형상과 잘 어우러지는 바이세이토바 거리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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