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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 기려진 이름, 지워진 이름 (강릉의 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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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 기려진 이름, 지워진 이름 (강릉의 두 여인)
      18.08.2026

      [칼럼] 정태철의 한국에서 부치는 편지

      와유(臥遊):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그림이나 글로 산천을 여행하는 일


      서울에서 강릉 가는 길은 고개를 넘는 길입니다. 지금은 기차가 두 시간 남짓이면 산맥 밑을 빠져나가지만, 옛사람들은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발로 넘었습니다. 고갯마루에 서면 등 뒤로는 첩첩 산중이고 눈앞으로는 동해가 트입니다. 산과 바다 사이에 긴 띠처럼 놓인 땅, 고개의 동쪽이라 하여 영동이라 부르는 고장의 들머리가 강릉입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강릉은 바다와 커피의 도시로 통합니다만, 이 좁고 환한 땅은 일찍이 조선의 두 여인을 길렀습니다. 한 사람은 한국에서 가장 큰 지폐에 얼굴이 실렸고, 한 사람은 제 시가 불태워지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이번 장은 두 이름 사이를 걷습니다.

      검은 대숲의 

      강릉 시내 북쪽, 줄기가 검은 대나무가 우거진 집이 있습니다. 까마귀 오(烏) 자를 써서 오죽헌(烏竹軒)이라 부르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 가운데 하나입니다. 1504년 이 집에서 신씨 집안의 딸이 태어났습니다. 외가였습니다. 아들 없이 딸 다섯을 둔 아버지 신명화는 둘째 딸에게 글과 그림을 가르쳤으니, 그 시절로는 드문 집이었습니다. 조선 여인의 이름이 대개 그렇듯 그녀의 본이름은 또렷이 전하지 않지만, 호만은 분명합니다. 사임당(師任堂), 옛 중국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 삼는다는 뜻으로, 남이 붙여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은 이름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선언을 당호로 내건 셈입니다. 오죽헌이라는 집 이름도 본디 이 집을 물려받은 외손의 호에서 왔으니, 이 고장에서는 사람의 호가 곧 땅과 집의 이름이 되곤 했습니다.

      그녀는 붓을 잡았습니다. 사임당의 그림으로 전하는 초충도들을 보면, 수박과 가지, 맨드라미와 원추리, 그 사이를 기어가는 벌레와 나비와 쥐가 화폭의 주인공입니다. 산수와 사군자가 그림의 정통이던 시대에, 마당의 작은 목숨들을 끈질기게 들여다본 눈이었습니다.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았더니 닭이 진짜인 줄 알고 쪼았다는 이야기, 잔칫집에서 국물에 얼룩진 남의 치마를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포도 넝쿨을 그려 받은 비단에 보답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란히 전해 올 만큼, 그 붓끝은 정밀하고도 너그러웠습니다. 그림만이 아니라 초서 글씨도 일품이어서, 그녀의 글씨로 전하는 병풍이 오죽헌 곁 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1536년 이 집 몽룡실에서 그녀의 셋째 아들이 태어납니다. 검은 용이 바다에서 날아올라 방으로 드는 꿈을 꾸었다 하여 방 이름이 몽룡실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 아이가 조선 유학의 또 한 봉우리, 율곡 이이입니다. 그러니 이 집은 지폐에 두 번 실린 집입니다. 어머니는 오만 원의 얼굴이 되었고 아들은 오천 원의 얼굴이 되었으며, 오천 원의 바탕 그림이 바로 오죽헌입니다. 이 집에는 율곡이 쓰던 벼루와 그가 어린 학동을 위해 지은 책 격몽요결이 남아 있는데, 뒷날 정조가 그 벼루 뒷면에 글을 새기게 하고 어제각이라는 집까지 지어 모셨습니다. 앞서 안동의 시사단처럼, 수원의 그 임금이 여기서도 존경을 보탰습니다. 한국 지폐의 인물 넷 가운데 둘이 한 집에서 난 모자라는 사실은, 이 검은 대숲의 집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서른여덟 무렵 사임당은 늙은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서울 시집으로 아주 떠나며 시 한 수를 남겼습니다. 백발의 어머니를 임영에 두고 홀로 서울로 가는 이 마음, 대관령 고개에서 자꾸 돌아보니 흰 구름 아래 저문 산만 푸르더라는 노래입니다. 한편으로 대관령은 이 고장 사람들에게는 모시는 고개이기도 합니다. 해마다 단오가 오면 강릉 사람들은 대관령의 산신과 국사성황을 맞아 내려와 한바탕 큰 굿과 탈놀이와 난장을 벌이는데, 천 년을 이었다는 이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습니다. 고개가 관문이자 신앙이던 땅, 영동의 살림은 그 고개를 넘나들며 짜였습니다.

      신사임당이 살아서 떨친 것은 그림이었으나, 죽은 뒤 기려진 것은 천재를 낳은 어머니와 현모양처의 본보기라는 상징이었습니다. 아들 율곡이 어머니의 일생을 적은 행장에서 학문과 글씨와 그림을 두루 증언했음에도, 후대의 사람들은 그녀를 무엇보다 율곡을 낳은 어머니로 기억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열여섯에 어머니를 잃은 율곡이 삼 년 시묘를 마치고도 슬픔을 가누지 못해 금강산에 들어가 한 해를 보내고 내려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화가로서 신사임당의 본모습은 그 액자 뒤에서 이제야 조금씩 다시 읽히
      고 있습니다.

      바다가 호수가 된 자리

      오죽헌에서 동쪽으로 길을 잡으면 곧 너른 물이 나타납니다. 경포호입니다. 본디 바다의 후미진 만이었는데, 파도가 실어 나른 모래가 둑처럼 쌓여 입구를 막으면서 바다가 호수로 변했습니다. 이런 물을 석호라 부릅니다. 바다였던 기억을 지닌 호수, 짠물과 민물이 만나고, 호수 너머 모래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시 바다가 출렁입니다. 호수에도 역사가 있어, 본디 둘레가 십 리를 훌쩍 넘던 물이 메워지고 줄어 지금은 사 킬로미터 남짓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달을 담기에는 넉넉합니다.
      관동팔경의 으뜸으로 꼽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오른 이 물가에서, 옛사람들은 무엇보다 달을 사랑했습니다. 경포대에 오르면 달이 하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하나, 바다에 하나, 호수에 하나, 술잔에 하나, 그리고 마주 앉은 임의 눈에 하나, 다섯이라고도 하고 셋이라고도 하는 이 표현은 전해 오는 풍류이지만, 물과 물이 맞물린 이 땅의 생김을 이보다 잘 말해 주는 숫자도 없습니다. 산이 바다를 막아선 영동 땅에서, 강릉은 호수 하나를 거울처럼 품어 하늘을 두 배로 사는 고장입니다.
      그 호수의 동남쪽 솔숲 마을이 초당입니다. 이제 두 번째 이름을 만날 차례입니다.


      불타지 않은 시

      초당이라는 동네 이름은 사람에서 왔습니다. 이 마을에 살던 허엽의 호가 초당이었고, 그 집안에서 1563년 딸이 태어났습니다. 드물게도 이름이 전합니다. 초희(楚姬), 뒷날의 허난설헌입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여섯 살 아래 동생이니, 한 집에서 조선 문학사의 남매가 났습니다.
      초희는 어려서부터 신동이었습니다. 여덟 살에 신선 세계의 누각 상량문을 지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고, 오빠 허봉은 누이의 재주를 아껴 벗인 시인 이달에게 시를 배우게 했습니다. 동생에게 스승을 붙여 글을 가르친 것 자체가 그 시대에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시에는 신선 세계를 노니는 노래가 유독 많습니다. 여덟 살에 지은 하늘 위 누각이 평생의 방이 되었으니, 갑갑한 땅을 시로 벗어난 셈입니다. 그러나 열다섯 무렵 혼인과 함께 문이 닫히기 시작합니다. 시집살이는 맞지 않았고, 남편과는 멀었으며, 의지하던 친정은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는 아들을 잃어,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섰구나, 피로 쓴 듯한 곡자(哭子) 시가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푸른 바다와 연꽃이 나오는 시 한 수에 스물일곱이라는 숫자를 남겼는데, 꼭 그 나이인 158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대는 이를 제 죽음을 미리 적은 시참(詩讖)으로 읽었습니다. 허균의 전언으로는, 평생 쓴 시를 모두 태우라는 유언에 따라 방 한 칸을 채울 만큼의 원고가 불길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뒷날 사람들은 그녀에게 세 가지 한이 있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작은 나라에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그 남편의 아내가 된 것, 본인의 말로 확인되지는 않는 전승이지만, 그 삶의 결을 후대가 어떻게 읽었는지는 보여 줍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는 이 이름을 모를 것입니다. 동생 허균이 친정에 남아 있던 시와 제 기억 속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을 엮었습니다. 1606년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이를 보고 감탄하여 서문을 지어 보탰고, 허균은 1608년 시집을 목판으로 새겨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난설헌의 시는 중국에서 거듭 간행되어 문인들 사이에 널리 읽혔습니다. 백 년 뒤에는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에도의 문인들이 조선 여인의 시를 베껴 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정작 시를 살린 동생은 십 년 뒤 역모로 몰려 형장에서 생을 마쳤으니, 남매의 운명은 끝까지 모질었습니다. 글만이 남아 두 죽음을 건넜습니다. 제 나라가 지운 시인을 이웃 나라들이 먼저 읽은 것입니다. 불태우라던 시가 바다를 건너 살아남았으니, 세한도보다 앞선 또 한 번의 역설입니다.

      호수와 고개 사이에서 읽는 법

      강릉에 가시거든 이 두 집을 하루에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죽헌에서 경포호를 끼고 초당 솔숲까지, 호수 하나를 사이에 둔 길입니다. 오죽헌에서는 몽룡실과 검은 대숲을, 초당에서는 생가터와 기념공원의 솔바람을 만납니다. 두 여인은 육십 년 시차를 두고 이 호수의 양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떠나고 열두 해 뒤에 다른 사람이 태어났으니, 둘을 다 본 것은 호수뿐입니다. 한쪽 집의 딸은 가장 큰 지폐의 얼굴이 되었고, 다른 쪽 집의 딸은 무덤조차 강릉에 있지 않습니다. 시집의 선산을 따라 경기도 광주에 누웠으니, 고향은 생가터와 솔숲으로만 그녀를 기억합니다. 초당두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초당은 허난설헌 남매의 아버지 허엽의 호, 그가 바닷물로 간을 잡아 두부를 만들게 한 데서 마을과 두부가 함께 이름을 얻었다고 전하니, 남매의 옛집 곁에서 드는 두부 한 모가 곧 답사의 한 페이지입니다. 바다 쪽으로 더 걸으면 안목 해변, 첫머리에 말씀드린 커피의 도시가 여기서 시작되었으니, 방파제의 커피 자판기 몇 대가 입소문을 타고 거리가 되었다는 내력이 전합니다. 옛 호수와 새 항구가 한 산책길에 듭니다. 발을 북쪽 주문진까지 넓히면 한류의 성지 둘이 기다립니다. 드라마 〈도깨비〉의 그 방파제와, 방탄소년단의 앨범 사진에 나온 바닷가 버스 정류장입니다. 화면 속 한 장면을 들고 세계 곳곳에서 찾아와 같은 자리에 서 보는 발길이 생겼으니, 경포의 달 셈법에 새 풍속이 하나 보태진 바닷가입니다.

      지워진 시가 나라 밖에서 살아남은 사연은, 멀리서 모국의 글을 읽어 본 독자들께 낯설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모국이 돌보지 못한 말과 글을 바깥의 독자들이 지켜 읽은 역사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공동체는 백 년째 살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설헌의 시가 연경과 에도에서 읽혔듯, 한국의 글은 오늘 알마티에서도 읽힙니다. 고려인 신문의 문예면이 한 세기 동안 고려인 문학의 못자리가 되어 온 것처럼 말입니다. 멀리서 읽는 일은 늦게 읽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읽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두 여인.. 한 이름은 지폐에 오르고 한 이름은 불길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글과 그림은 생명력이 깁니다. 액자 뒤의 화가도, 잿더미 곁의 시인도, 끝내 다시 읽히는 날을 기다려 살아남았습니다. 같은 재능이 다른 시대에 났다면 어떤 꽃이 피었겠는가, 그 물음을 품고 두 집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답사는 깊어집니다. 여러분이 경포 호숫가에 서는 날, 물 위의 달을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곁에, 오래 잊혔던 이름 하나를 함께 띄워 주시기를. 다섯이라던 달의 셈법에, 그렇게 여섯째 달이 하나 늘어납니다.

      알아 두면 좋은 말들
      ● 석호(潟湖): 모래둑이 바다 일부를 막아 생긴 호수.
      ● 영동(嶺東)·영서(嶺西): 대관령의 동쪽과 서쪽. 고개가 가른 두 생활권.
      ● 당호(堂號): 집에 붙인 이름, 또는 그 집 주인을 부르던 호.
      ● 상량문(上樑文): 집의 마룻대를 올릴 때 짓는 축원의 글.
      ● 행장(行狀): 세상을 떠난 이의 일생을 적은 글.
      ● 시참(詩讖): 시가 뒷일을 미리 맞힌 것처럼 읽히는 일.
      ● 간행(刊行): 책을 찍어 세상에 내놓는 일.

      사진출처: m.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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