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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세, 모든 게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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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세, 모든 게 이제 시작이었다
      72세, 모든 게 이제 시작이었다
      30.08.2026
      1949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김 니나(Ким Нина)는 오랫동안 러시아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살았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작가로서 첫 책을 펴낸 것은 70대에 들어선 뒤였다. 2000년 가족과 함께 벨기에로 이주한 뒤에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도 현지 러시아어 신문에 글을 기고했으며, 유럽 러시아어권 고려인협회(AKE)를 설립해 동포사회 활동에도 힘을 보탰다.

      그리고 70대에 접어든 어느 날,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72세에 펴낸 첫 책 ‘에마니의 회고록(Мемуары Эмани)’이었다. 그 뒤로 ‘이민의 꽃(Цветы эмиграции)’, ‘루빅스큐브(Кубик Рубика)’, ‘주머니칼(Перочинный ножик)’, ‘밥이, 물이 그리고 침치’(Паби, мури и чим-чи) 등이 차례로 세상에 나왔고, 2026년에는 고려인의 전통과 삶을 담은 ‘구미호의 꼬리(Хвосты Кумихо)’도 출간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그가 책에 담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 이민자로 살아온 시간, 그리고 점점 잊혀가는 고려인의 풍습과 음식까지. 김니나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 니나 선생님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가가 되셨는데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요.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글쓰기에 온전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벨기에로 이주하면서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식당 주방에서도 일했고, 청소 일도 했지요.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중 조금씩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커졌지요. 특히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것이 첫 책 『에마니의 회고록』입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 그렇게 쓴 ‘에마니의 회고록’이 실제로 책으로 출간되기까지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첫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 ‘에마니의 회고록’을 쓰고 나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사실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러시아 대형 출판사 ‘엑스모(Эксмо)’에서 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소식을 받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가족들이 모두 놀랐지요. 그러자 아들이 저를 진정시키면서 “엄마, 진정제 좀 드세요. 사람은 너무 기뻐도 죽을 수 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제 나이 72세에 처음으로 제 이름이 적힌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쓰셨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가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인가요?
      - 아무래도 첫 책인 ‘에마니의 회고록’에 가장 마음이 갑니다. 제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제가 자란 마을,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책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끔 어린 시절을 보낸 그 마을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모든 것이 달라졌겠지요. 그래도 제가 뛰어놀던 곳,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요. 아마 그곳에 가면 오래전 기억들이 하나둘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요.

      - 최근 출간한 ‘구미호의 꼬리’에서는 고려인의 전통과 풍습을 다루셨는데요. 이 책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 계기가 된 것은 여동생의 죽음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전통 절차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이 있었는데,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예전 같으면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됐는데… 그때 문득 깨달았어요. 이제는 우리가 바로 그 어른들이구나. 우리는 벌써 70세 넘었으니까요…
      그 생각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인의 풍습과 전통을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전해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고 이런 풍습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때 구미호가 떠올랐습니다. 제 꾀 많은 구미호가 젊은 세대가 자신의 뿌리와 전통을 좀 더 재미있게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책은 아마 20대 이상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민의 꽃’은 선생님께서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이라고 하셨는데요. 현재는 온라인으로만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이민은 작은 죽음과도 같아요. 고향을 떠나는 순간 그곳에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남겨집니다. 익숙했던 생활방식과 음식,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까지도요. 모든 게 어느 순간 멀어지는 거지요. 이민을 하면 새로운 곳에서 다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장소만 바뀌는 것은 아니에요. 예전의 내가 한 번 죽고, 낯선 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흩어진 자신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모으면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하지요. 그래서 ‘이민의 꽃’은 제가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이기도 합니다.

      - 지금은 고려인 음식에 관한 책도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인가요?
      - 고려인 음식은 참 특별합니다. 고려인의 역사 자체가 특별한 것처럼요. 하지만 단순히 음식 만드는 법만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요즘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웬만한 요리법은 다 나오잖아요.
      제가 쓰고 싶은 것은 음식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 기억 속에는 음식에 얽힌 이야기가 참 많아요. 저는 올해 77세인데, 전통적인 고려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여러 이모와 고모들이 음식을 만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우리 집에서는 된장, 티레이(간장), 뜨비(두부), 찰떡, 침페니(증편) 같은 고려인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직접 맷돌도 만드셨고, 할머니는 만터우(맨찐빵)를 빚으셨어요. 제 결혼식 때는 어머니의 이모 – 차파이 아먀(할머니)가 가주리(고려인 한과류 кадюри)를 만들어주셨는데, 그런 기억들을 어떻게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 책에는 레시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보고, 먹고, 기억해온 고려인 음식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목은 ‘밥이, 물이 그리고 침치’입니다.

      - 선생님의 작품 중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책도 있나요?
      - 물론 있지요. 누군가 관심을 가져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주머니칼’을 추천하고 싶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그 안에는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세대와 손주 세대는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서 오는 것 같아요. 우리가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젊은 세대가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거의 모른다는 것도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주머니칼’에는 11살 손자가 자기 할아버지를 다른 은하계에서 온 외계인처럼 바라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아버지의 귀에는 반짝이는 전선이 있고, 가슴에는 금속 장치가 들어 있으며, 걸을 때마다 무릎에서는 소리가 나고 잘 굽혀지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느 날 손자는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옛날 사진 한 장을 보게 됩니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비행사였어요. 손자는 의아해합니다. “이렇게 젋고 멋있던 사람이 어떻게 지금의 할아버지가 된 거지?” 그러면서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를 조금씩 새롭게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떤 책을 쓰고 싶으세요?
      - 다음에는 고려인 여성들에 관한 책을 써보고 싶어요. 가정과 사회에서 고려인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또 시대가 흐르면서 그 역할과 전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유럽에서는 그런 변화가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여성의 위치를 보면 그 나라와 사회, 민족, 그리고 한 가정의 모습까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엘레나 기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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